상담을 할 때 고학년 담임이라 다행인 점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불안이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학생들이 상담을 신청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이다. 학생들은 정신없이 학원에 다니느라,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느라 늘 말할 상대가 부족하다. 특히 믿을만하고(?) 성숙한 존재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때 교사가 시간을 내 학생들과 이야기 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우 좋아한다. 더 나아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상담을 끝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낼때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교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 대해 상담하다 보면 상담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경우가 있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학생을 상담할 때, 우리 반이 게임에서 지면 화를 내는 학생을 상담할 때, 학생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을 상담할 때, 선생님을 무시하는 학생을 상담할 때, 친구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학생을 상담하는 등의 경우이다. 이때에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이야기 너머에는 항상 숨겨진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그것을 찾아 뭉친 근육을 풀어주듯이 내면 속 깊은 곳에 맺혀있는 뭉침을 풀어주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심리학 책을 읽던 도중 한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모델을 발견하였다. 바로 엘리스의 ABCDEF 모델이다.
ABCDEF 모델
A (Activating Event : 선행사건) : 선행 사건이란 학생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말한다.
B(Belief System : 신념체계) : 신념 체계는 선행 사건에 대한 학생의 신념을 말한다. 이러한 신념 체계는 합리적인 것일 수도 비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은 학생이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C(Consequence : 결과) : 결과란 학생이 선행 사건을 경험한 후 신념체계를 통해 그 사건을 해석한 것으로 선행 사건 후 느끼게 되는 감정과 행동적 결과를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교사가 학생들을 상담 하기 전 학생들이 겪는 일이다. 학생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고유의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건들에 대한 해석을 내린다. 신념체계가 올바르다면 학생들은 사건들에 대해 적절한, 건강한 해석을 하고 바람직한 정서적, 행동적 결과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신념체계가 올바르지 않다면 선행 사건에 대해 비합리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정서적, 행동적 결과를 나타낸다.
상담에서 교사가 학생과 하는 것은 DEF의 과정이다. DEF과정은 다음과 같다.
D(Debate : 논박) : 학생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논리적, 실용적, 현실성에 비추어 논박하는 것이다. 논박은 반드시 강압적인 행동이나 명령이 아닌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학생들과 토론을 펼치듯이 이루어져야 한다.
E(Effect : 효과) : 논박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논박을 통해 학생이 가진 비합리적인 신념을 철저하게 합리적인 신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F(Feeling : 감정) : 논박이 성공하여 효과가 나타난다면 학생은 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이를 통한 새로운 감정과 행동을 나타내게 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교사가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하여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이 합리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담했던 학생의 경우를 각색하여(상담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체력적으로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다. 때문에 반 대항 경기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게임에 참여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 학생에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게임에서 지는 상황이 오거나 반 친구들이 게임 중 실수를 하면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루는 너무 심하게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날이 있었고, 보다 못한 나는 학생과 상담을 하였다.
(이 경우 선행 사건은 게임이 지는 상황이나 반 친구들이 게임 중 실수를 하는 경우이고 결과는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위축되게 하는 것이다. 왜 이 학생은 이런 행동을 하였을까? 바로 학생이 가진 고유의 신념체계 때문이다.)
상담을 통해 교사가 해야할 일은 비합리적인 신념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에게 왜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드는지 물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평판을 깎아 먹으면서 까지 말이다.(학생들에게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본인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이야기해주면 대부분의 학생은 더 솔직히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학생은 대답하였다. 자신이 화나는 첫 번째 이유는 친구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게임을 할 때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학생이 가진 게임 속 친구들에 대한 신념체계이였다. 나는 이를 논박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을 꺼내 들었다. 바로 게임을 촬영한 동영상이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보여주며 그 학생에게 논박하였다. 동영상 속 게임에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오는 공을 다루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다. 다만 잘 다루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 경기에 내담자 학생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내담자 학생이 친구들을 타박한 이후였다. 타박한 후에 친구들은 게임에 주도적으로 즐겁게 참여하지 못했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 학생이 가진 비합리적인 신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게임에서 내 팀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게임에서 항상 이길수는 없는 거라고 진솔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이 논박은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내담자 학생에게 하나의 tip도 주었다. 그 tip은 친구들이 실수할 때 괜찮다고, 잘할 수 있다고 힘을 복돋아 주는 말을 하는 것이 친구들도 기쁘게 해주고 내담자 학생도 좋은 평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 이후 내담자 학생과 친구들은 게임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내담자 학생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