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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레디메이드 인생/채만식

레디메이드 = 기성품

 

 독후감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기로 결정한 이후 첫 책으로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선택했다. 왜였을까? <치숙>에서 읽은 채만식 특유의 풍자가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속으로 이 정도의 짧은 글이면 처음  독후감을 작성하기에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처음 책을 골랐을 때는 두 번째 이유였다. 책이 짧기도 하고 읽어본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가진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을 발견하였고 놀랐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독후감을 쓰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지금 이 독후감을 몇십 번째 수정하는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 한 번쯤은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어봤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마지막 문장을 들어는 봤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유감이다. 이왕 큰 마음먹고 독후감을 쓰는 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레디메이드 인생>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레디메이드 인생>은 주인공 P가 신문사 사장 K에게 구직을 부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문사 사장은 주인공 P의 구직 활동을 거절하며 인텔리들이 농촌으로 돌아가 계몽사업(?)이나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심훈의 상록수를 떠올리면 쉽다.) 주인공 P는 이 말에 어이없음과 경멸감을 느끼며 신문사에서 나온다.(책을 읽어보면 채만식이 계몽사업을 좋게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P에게는 M과 H라는 친구가 있다. M과 H는 P와 같은 인텔리이지만 똑같이 취업에 실패한 룸펜들이다. 친구의 책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지고 한심하게도 P, M, H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 

 다음날 P에게는 할 일이 있다. 이제까지 형이 돌보고 있었던 9살 자신의 아들 창선이를 역에서 데려오는 것이다. 형은 창선이를 계속 공부시키고자 하였으나 형편이 넉넉지 못해 동생에게 자신의 조카를 돌려보낸다.(P는 책임감이 없다.) P는 급하게 돈을 변통하여 집세를 내고 가재도구를 마련한다. 그 후 역으로 나가 아들을 데려오고 다음날 아들을 XX인쇄소의 A에게 맡기고 나오며 P는 혼자 중얼거린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레디 메이드 인생>에서 주인공 P는 시대의 요청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식계급(인텔리)이다. 시대적 요구는 소설 속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된다.

 

신흥 부르죠아지는 민주주의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 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그런데 시대의 요청으로 인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인텔리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공급되었다. 아차! 그로 인해 인텔리들은 높은 실업률에 휩싸인다. 그리고 P와 M, H와 같은 실업자 인텔리는 현실에 좌절한다.

 

부르죠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효가 아니 느니 그들은 결국 꾐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 우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테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테리인 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 오는 것이 99프로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테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인텔리들은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가 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도 없다. 낭패 불감의 무기력한 상태 말 그대로 개밥의 도토리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소설이 끝났다면 그저 괜찮은, 1930년대 지식인 계층의 애환을 담은 시대상을 보여주는 소설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디메이드 인생>의 모습은 끝나지 않는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애환은 1930년대를 넘어 2010년대로 넘어온다. 

현대 사회와 레디메이드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레 요즘의 사회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경제 성장기에 자란 70년대 생은 대학만 나와도 취직이 원활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때 당시의 부모들은 집안의 전부인 소를 팔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자신이 누릴 것을 조금이라도 아껴 자식들의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투자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빛을 바랐다. 국가적으로는 높은 대학 진학률을 바탕으로 고급 인재 확보의 용이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기업에 취직하여 묵묵히 일을 하다 관리자, 임원에 올라간 후 명예롭게 퇴직하고 자신이 모아둔 재산과 회사에서 주는 연금을 받으며 노년을 보낸다는 꿈을 주었다.

 그러나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모든 것이 격변했다. 더 이상 고급 인재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기업들은 점차 핵심 전략 부서를 제외한 일을 하청을 통해 해결한다. 이러한 상황은 인텔리들의 취업문을 더욱 좁게 만든다. 그들은 1930년대와 다름없는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분석은 여기서 마치고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와 레디메이드 인생

 나는 현재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무슨 이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그러나 이게 나의 현재 상태를 잘 표현하는 문구이다.

 나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내가 교사라는 말은 곧 사회적 수요로부터 선택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현재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기성품이다. 대학교 4년을 다니면서 틀에 찍어서 만들어진 교사라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30년이 넘도록 남은 교직 생활에 나는 나라는 상품을 두 가지의 방법으로 다룰 수 있다. 하나는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으로서 관리되면서 사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주어진 교재를 참고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모난 학생이 없는지 잘 감시하고 그저 순리대로 1년을 아이들과 보낸 후 또 1년을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 나쁘지 않다. 기성품에 어울리는 삶이다. 오히려 불안과 조급, 억울함이 만재해있는 요즘 사회에서는 이 같은 삶만 해도 축복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이러한 기성품보다 뒤샹의 '샘'이 되고 싶다.충격적인 기성품인 뒤샹의 '샘', 그저 걷보기에는 남자 소변기이지만 예술이라 불리는 기성품. 독특함을 가지고 유일한 존재인 이 기성품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이러한 삶을 살고 싶다. 수 많은 교사들 중 독특함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다. 이 길은 어렵다.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해야 하고, 내가 할 수업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해보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모난 학생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헐레벌떡 일해야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 속에서 교사는 예술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