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허리 펴고 바르게 앉으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담임을 맡은 고학년 학생들은 성장기라 뼈가 간지러운지 더욱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을 힘들어한다. 우리 반을 예로 들면 수업 중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학생은 반절이 되지 않는다. 다른 반절은 어깨를 한쪽으로 굽히고 있거나(보통 오른손으로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왼쪽 어깨로 고개가 쳐져있다.) 몸을 움츠리고 있거나(새우를 연상하면 쉽다) 심지어 한쪽 뺨을 교과서에 대고 수업을 듣기도 한다.(설마 이러한 이유가 다 내 수업이 재미없어서는 아니겠지? 생각해보니 재밌는 선생님 반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바른 자세로 앉으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학생 중 한명이 왜 어깨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친절하게도 혼을 내지 않고) 어깨와 허리를 바르게 펴야 성장에 방해를 받지 않고 성장기에 쑥쑥 클 수 있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나에게 그러면 자기는 키가 너무 클 것 같은데 허리를 굽히고 다녀야 하냐고 물었다. 그다음은 생략하겠다.
그 이후 나도 어깨와 허리를 왜 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도 찾았다. 성장기적 접근, 학습 환경적 접근 ,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설명은 조던 피터슨 교수가 쓴(나는 이 교수의 책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나오는 접근이다. 여담이지만 이 흥미롭고 경이로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혼돈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여기에 나온 접근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바닷 속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바닷가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닷가재를 포함한 동물의 세계에서 영역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동물에게 영역은 삶의 터전이자 자신만의 안식처이다. 불리한 영역을 차지한 동물을 생각해보라! 천적들에게 공격당하며 종족번식에 위협을 당하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영역을 둔 다툼은 매우 중요하다.(인간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영역 다툼을 하는 도중 승자와 패자가 너무 치열하게 싸우면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툼의 결과 양쪽이 너무 약해진다면 다른 경쟁자로부터 곧바로 도전을 받을 수 있는 상처뿐인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를 피하는 다양한 수법이 발달하였다. 예를 들어 강아지의 경우 꼬리를 내리거나 배를 보여준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승리와 패배가 나뉜 바닷가재는 어떻게 되는가? 우선 뇌의 화학물질이 변한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진다. 세로토닌이 높아지면 자신감이 넘치고 몸이 유연해지고 돋보여진다. 패배한 바닷가재는 그 반대이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고 옥토파민의 수치가 높아지는데 이렇게 되면 후줄근해 보이고 점차 무기력해지고 다른 상대 앞에서 위축된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협 상황에는 빠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함을 의미한다. 그 이후 승리한 바닷가재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패배한 바닷가재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 강한 바닷가재를 피해 가면서 살아간다. 신기한 점은 패배한 바닷가재에게 우울증 약을 주입해서 세로토닌 수치를 높인다면 다시 자신감이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도 위와 유사하다. 우리의 뇌에는 지위에 대한 계산기가 내장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우리의 뇌는 계산해서 우리에게 화학적으로 상대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화학적 지위가 높다면 어떻게 될까? 바닷가재의 경우와 같이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단기적인 계획을 넘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다. 자신감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위가 낮다면? 후줄근해지고 무기력해지고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에 대한 반응 민감도는 올라간다. 더 나아가 단기적인 위협 상황에 대비하느라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까지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그렇다면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와서 왜 학생들에게 허리를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라고 해야 하는가? 바로 허리를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신체와 정신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다. 바로 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당당해짐을 의미한다. 당당한 자세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사회적 지위가 높게 보일 것이다. 무언가 있어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당신을 높은 지위에 있는 것처럼 대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본 당신의 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에게 세로토닌을 선사해줄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은 당신을 더욱 당당하게 살게 해줄 것이다.
당당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의 쳐져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낮은 지위를 부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나를 낮게 대하는 것을 보고 내 뇌도 나의 지위를 낮출 것이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질 것이다. 행복이 감소할 것이다. 불안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은 더더욱 나에게 낮은 지위를 부여할 것이다. 악성 순환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느라 1교시를 소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내 생각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았던 것 같다. 허리를 펴기는 했으니 말이다.
당장 허리를 펴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너는 낮은 사람이 될 것이다! 오히려 이 말을 할 걸 그랬다. 그러면 이해도 쉽고 1교시를 소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